양은순 총장님 초청 강의 축약
양총장님의 초청 강의 축약
60이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고운 모습의 양총장님
어느 집안의 모임에 가도 한분쯤은 보일 것 같은
수수한 한국 전통의 모습이다.
포근포근하고 아롱다롱한 뜨개실 뭉치 몇 개가
우리들의 손에 쥐어지고
그 뜨개실 뭉치를 마이크삼아 장점과 함께 자신을 소개하고
실 뭉치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 . . . .
이렇게 시작된 연습할 것도 준비할 것도 없는 단순한 놀이는
의외로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실타래 놀이 이후에 이어진 강의(한 회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의라기보다는 구연동화 같았다고 한다)가 모두 이 놀이에 연관되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양총장님 강의의 축약을 적어보겠다.
참고로 이 내용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내용이니
본 강의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점을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겸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심층심리를 들여다보면
장점은 내 것이라는 의식이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장점은 내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게 맡겨진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이 장점이라면
감추기 보다는 드러내려 노력해야 옳을 것이다.
장점은 반드시 단점을 동반한다.
칼 융을 그것을 섀도우(그림자)라 하였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듯이
장점이 강할수록 단점은 더욱 짙어진다.
이것을 알면 장점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라
내가 알아야할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손가락을 보면 산이 5개, 골이 4개 이듯이
어떤 사람의 장점이 5개라면 단점도 4개는 될 것이다.
부부가 손을 맞잡을 때 단순히 잡으면 쉽게 떼어놓을 수 있지만
장점(손가락)이 단점(골)을 덮어주며 맞잡으면(깍지 끼어 잡아짐)
그 연합은 단단하여 자의가 아니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 든든한 결합 안에서 자녀들은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
인간관계도 같은 것이다.
내 장점으로 상대의 단점을 덮어주고
상대의 장점이 내 단점을 덮어준다면
인간관계도 훨씬 돈독해지지 않겠는가?
관점의 차이라는 글이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생각을 진지하게 해서 좋습니다.
사교성이 적은 사람은 정직하고 과장되지 않아 좋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실수가 적고 정확해서 좋습니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의욕이 넘쳐서 좋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좋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아 좋습니다.
직선적인 사람은 속정이 깊어 좋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관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서
단점보다는 장점을
어둠보다는 밝음을
더 많이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다르지만 같은 한 지체이기에. . .
이 글처럼 원형을 보면 장점이, 섀도우를 보면 단점이 된다.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면
그 이면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연애대상은 대개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이 되기 쉽다.
나와는 다른 점이 매력의 포인트가 되어 사랑하게 되었으나
결혼 후에는 이 매력의 포인트가 싸움의 포인트가 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장점 찾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어찌 보면 부부는 장점 찾는 놀이와 같다.
놀이에 성공하면 70점짜리 부부가 만나
100점짜리 부부가 되어간다.
그러나 단점을 찾기 시작하면 100점짜리 부부가 만나
70점 이하의 부부로 변해간다.
相談을 한자로 풀이하면
'서로 눈을 마주보면서 마음으로 뜨겁게 이야기한다'가 된다.
이 말은 곧 상대의 장점을 찾아준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단점을 찾는다면 차가운 이야기는 될지언정
뜨거운 이야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상담의 기본은 경청, 이해, 반응이라 압축할 수 있다.
경청은 비교, 판단 없이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짜증을 내면서
‘선생님께 꾸중 들었어’라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혹시 ‘무슨 잘못을 한거야’하고 꾸짖지는 않는가.
이 말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간 것이니 바른 경청이 아니다.
‘다른 얘들도 같이 잘못을 했는데 너만 꾸중을 들어서 기분 나쁘구나’
이처럼 앞서가는 것도 올바른 경청이 되지 못한다.
단순히 ‘선생님께 꾸중 들었구나’라고 다시 들려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는 꾸중들은 사유를 차근차근하게 말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마음이 정리되어갈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바른 이해와 바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상담처럼 ‘느림의 미학’이 강조되는 학문도 드물 것 같다.
동생을 본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동생을 미워하기 쉽다.
동생에게 흘기며 ‘○○이 미워’라 말하는 아이를 보고
‘나는 네가 미워’ 그러지는 않는가?
그런 엄마의 아이는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아이는 아직 분별력이 부족하다.
엄마의 수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미워하면 안돼’라는 엄마의 반응에
아이는 몰래 미워하게 될 것이고
더불어 동생을 속으로 미워하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싹틀 것이다.
그러면 이때는 어쩌면 좋을까?
이때는 조금 시간을 두었다가 ‘동생 기저귀 좀 가져다줄래.’라고
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때 아이의 마음속에는 동생이 미운 마음에
심부름을 거절하려는 마음과
엄마의 심부름이니 들어야 한다는 마음의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 기저귀를 가져다주면 형성되는 마음이 분화이다.
동생을 미워하는 것과 엄마를 도와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미워하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엄마의 심부름도 거절하게 된다.
감정은 내가 아니라 나의 일부이다.
다시 말하자면 감정은 내게 찾아온 손님이다.
손님은 나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며
가끔 찾아오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손님을 나 전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전화도 없이 저녁 늦게 들어오면
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남편이 미워진다.
사실은 연락도 없이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미운 것인데
남편 자체를 미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직장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이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좋아하지 않는 교사가 있다면
이는 모두가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다.
의견이 다를 뿐이고 공부를 못할 뿐이지
그 인간 전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화는 심리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이다.
분화가 잘 된 사람은 인간관계가 훨씬 원활해진다.
어렸을 때 분화가 잘 이루어지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하겠다.
실타래를 푸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말한 장점을 다시 들려주면서
덕담을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 덕담이 곧 칭찬이다.
칭찬을 현실적이며 실제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잘못하면 칭찬이 립서비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칭찬은 오히려 칭찬한 사람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가 있다.
어린 자녀가 어버이날 스카프를 선물하였다.
‘야! 참 예쁜 스카프네. 고맙다 엄마가 잘 쓸께’라고
칭찬을 했다고 하자.
그런데 어린애의 안목이 엄마의 눈에 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심중에 사용되지 않기가 쉬우며
그에 따라 이 칭찬은 오히려 엄마의 말에
신뢰를 떨어뜨리기 쉽다.
‘이 스카프는 무늬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물방울 원피스에 잘 어울리겠네. 고맙다.’
이처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칭찬을 한 후에
가능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물방울 원피스에 스카프를 사용해 주면 된다.
다음엔 다른 옷을 입을 테니까
아이는 엄마가 자기가 사준 스카프를 쓰지 않아도
옷이 다르니까하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칭찬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칭찬도 기술이다.
이런 칭찬을 하기 위해선 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칭찬을 하기 위해서도 훈련이 필요한 것을 보면
세상엔 공짜는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실타래를 당기면 팽팽해져 끊어질 것 같고
느슨하게 풀어주면 엉킬 것 같아진다.
인간관계도 매 한가지이다.
아들이 어머니에 가까이 가면 아내가 서운해지고
아내에게 가까이 가면 어머니가 서운해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에는 간격이 중요하다는
양총장님의 강의에 수긍이 간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모두 통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장점이 단점을 덮어 깍지 낀 손이 되면
인간관계가 튼튼해진다는 말씀이 다시 한번 설득력을 갖는다.
엉킨 실타래를 빨리 푸는 방법을 물어보니
누군가가 잘라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그처럼 쉽게 끊어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성급하게 피어리드를 찍지 말자.
내일이면 더 성숙해 질 것이다.
진정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외면보다 내면에 있다.
이미 박사요, 대학의 총장인 자신은
지금도 성장을 위하여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고 한다.
흰머리는 면류관이요.
주름살은 개인의 history이기에 결코 손대지 않는다는
양총장님은 그래서인지 60의 나이에도
곱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늙어가야 할 텐데 . . . . .
산소는 잘 태우는 기체이다.
수소는 잘 타는 기체이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가 합해진 물은 오히려 불을 끌 수 있다.
그리고 물은 생명수이다.
물이 없는 곳에는 결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상담은 만남의 예술이다.
마치 산소와 수소가 만나 물이 되듯이 . . . .